
글: 이현승
10월 19일, 김정은이 뇌출혈로 쓰러져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는 소문이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중국 반체제 인사의 게시물이었다. 하루 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의 의류·신발 전시회를 둘러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SNS에는 “김정은이 지난 10년 동안 37번째로 사망했다”는 조롱까지 돌았다.
그러나 질문 자체를 웃어넘길 수는 없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9월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달하며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37번째’가 아닌 진짜 사망 소식이 나올 때,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외부의 상상: 붕괴, 난민, 중국군
외부에서 가장 자주 그려지는 그림은 극적이다. 정권은 흔들리고, 굶주린 주민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몰려들고, 중국군이 국경을 넘어 들어온다는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가 근거 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2013년 보고서「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한 대비」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은 대규모 난민 유입과 미군 개입을 동시에 우려하게 된다. 그래서 난민이 중국 땅에 닿기 전에 막기 위해 북한 내부에 완충지대를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베넷 자신도 자신의 연구가 북한 정부가 ‘반드시 붕괴한다’고 가정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의 작업은 예측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계획이다. 그런데 바깥 세계는 이 대비책을 종종 예언처럼 소비해 왔다. ‘지도자 사망’과 ‘정권 붕괴’는 전혀 다른 사건이다.
반대편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 출신의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2020년 김정은 사망설 당시 이렇게 전망했다. 북한의 장성들과 고위 정치인들은 권력 투쟁을 벌이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벌일 것이다. 그리고 김씨 일가의 누군가가 될 가능성이 큰 새 지도자를 받아들일 것이다. 같은 해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가 세계 전문가 60여 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도 의견은 갈렸다. 한쪽은 대혼란을, 다른 한쪽은 ‘평소와 다름없는 북한’을 예상했다.
나 역시 정권 붕괴, 난민 대이동, 중국군 진입은 가능한 미래들 가운데 가장 하위권의 시나리오로 본다.
두 번의 죽음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북한에서 살면서 김일성의 사망과 김정일의 사망을 모두 겪었다. 두 번 모두 체제의 동요도, 난민의 대이동도, 내부 권력 다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두 경우 모두 후계자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북한에는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작동하는 그들만의 프로토콜이 있다. 그 프로토콜의 최우선 목표는 언제나 체제 안정이다.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이 사망했다. 북한은 이 사실을 34시간 뒤인 이튿날 정오에야 공식 발표했다. 그 사이 후계자 김정일은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북중 국경부터 일시 봉쇄했다. 내부적으로는 국가장의위원회부터 꾸렸다. 장의위원 명단은 곧 새 권력 서열의 발표였다.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김정일이 사망했다. 발표는 51시간 30분 뒤인 19일 정오 ‘특별방송’으로 나왔다. 아버지 때보다 17시간 이상 늦었다. 후계자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그만큼 약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북한 지도부는 이번에도 국경을 봉쇄하고 군의 경계 태세를 높이며 내부 단속부터 했다.
두 시기 모두 공통으로 벌어진 일이 하나 더 있다. 군단장과 군단 정치위원 같은 군 수뇌부를 ‘회의’라는 명목으로 평양에 불러들였다. 혹시 모를 반란이나 무력 충돌을 미리 막기 위해서였다. 병력을 지휘하는 사람을 부대에서 떼어 평양에 묶어두는 것, 이것이 북한식 위기관리의 첫 단추다.
북한은 지도자가 죽었다고 해서 국경을 열어 중국군을 들이고, 난민이 빠져나가는 것을 손 놓고 바라보는 무능한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런 순간을 대비해 수십년 넘게 통제력과 수단을 길러온 체제다.
김정은이 내일 사망한다면: 1주일의 시간표
김정은이 오늘 밤, 혹은 내일 갑자기 사망한다면 북한 지도부는 어떻게 움직일까? 큰 틀은 1994년과 2011년의 반복일 것이다.
첫 24시간: 침묵과 봉쇄. 사망 사실은 호위사령관과 극소수 측근에게만 공유된다. 북중·북러 국경이 봉쇄되고, 외부 통신과 국내 이동이 통제된다. 동시에 군단장과 정치위원들에게 평양 ‘회의’ 소집령이 떨어진다. 손발을 먼저 묶는 것이다.
2~3일째: 후계자 결정. 여기서 선대와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김정일에게는 20년 넘게 다져진 후계 체제가 있었다. 김정은에게도 최소한 ‘대장’ 칭호와 공식 직함이 있었다. 지금은 공식화된 후계자가 없다. 지도부는 엘리트와 북한 주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후계자, 혹은 임시 최고지도자를 골라야 한다. 이것이 1주일 가운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3~5일째: 공식 발표. 그래서 이번 발표는 선대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며칠을 크게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소문이 퍼지고, 소문은 곧 혼란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지도부가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조선중앙TV의 특별방송이 나올 것이다.
5~7일째: 장의위원회와 유훈통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이 발표되고, 그 순서가 새 권력 지형을 드러낸다. 애도 기간 동안 ‘김정은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라는 구호 아래 충성 서약이 이어진다. 슬픔은 통제의 도구가 된다.
누가 그 자리를 잇는가
한국 언론과 전문가, 정부가 가장 많이 거론하는 후계자는 딸 김주애다. 국정원은 올해 국회 보고에서 김주애를 ‘후계 내정 단계‘로 평가했다. 그러나 나는 이 평가가 정확하다고 보지 않는다. 김주애 후계자설은 가능한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낮은 순위에 불과하다.
한국 정보당국의 북한 내부 판단이 빗나간 사례는 적지 않다. 2016년 한국 정부는 리영길 총참모장이 처형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석 달 뒤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버젓이 모습을 드러냈다. 2020년 여동생 김여정에게 통치권 일부가 ‘위임’됐다는 판단도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공개 석상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과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하물며 ‘내일 당장’이라는 조건이라면 10대 초반의 소녀가 군과 당을 장악할 수는 없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여동생 김여정이 사실상 임시 후계자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김여정은 김정은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친동생으로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지녔다. 오랫동안 오빠의 곁을 지키며 권력의 중심부를 경험한 유일한 가족 구성원이기도 하다. 형 김정철은 정치 무대에 거의 나선 적이 없어 당장은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김여정에게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는 대남·대외 메시지를 이끌며 존재감을 키웠지만, 군과 공안기관에 대한 장악력은 검증된 적이 없다. 여성 지도자에 대한 북한 엘리트 사회의 거부감도 무시할 수 없다. 김여정 혼자서는 임시 단계에서 엘리트와 주민의 불안을 곧바로 잠재우기 어렵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백두혈통의 상징’인 김여정과 ‘실무 후견인’을 결합한 과도 체제다. 그 후견인으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최룡해다. 최룡해는 2019년부터 7년 동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국가 의전서열 2위를 지냈다. 올해 공식 직책에서 물러났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김씨 일가 다음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얼굴이다. 그의 배경도 결정적이다. 그의 아버지 최현은 김일성과 함께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 투쟁을 벌인 동지였고, 이후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혁명 1세대의 상징이다. 북한이 2025년 진수한 첫 5천 톤급 신형 구축함에 ‘최현호’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다. ‘백두혈통’에 버금가는 ‘빨치산 혈통‘의 정통성을 가진 인물인 셈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원로라는 점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다. 자기 파벌이나 권력 기반이 없는 인물이기에 김씨 일가가 경계할 이유가 적다. 그만큼 과도기의 상징으로 내세우기에 안전하다. 최룡해는 김정은 집권 초기 2년 동안 장성택이 했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엘리트와 주민의 불안을 잠재우는 상징이자, 김여정을 보좌하는 후견인 역할이다. 이 과도 체제는 김여정이 군과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같은 공안·사법기관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가 될 것이다.
결론: 붕괴가 아니라 ‘새 지도부’를 준비하라
김정은의 사망은 북한 붕괴의 시작이 아니다. 북한은 지도자의 죽음을 두 번 겪었고, 두 번 모두 국경을 닫고 군의 손발을 묶고 침묵 속에서 권력을 재편했다. 세 번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만큼 그 침묵이 조금 더 길어질 것이라는 점뿐이다.
워싱턴과 서울이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난민 수용소나 중국군 진입에 대비한 작전 계획이 아니다. 김정은 이후의 새로운 북한 지도부와 어떤 협상을 할 것인지, 그 과도기에 북한을 어떻게 변화의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다. 권력이 가장 약한 순간은 새 지도자가 자리를 잡기 전의 과도기다. 그 짧은 창을 놓치지 않으려면, 붕괴를 기다리는 전략이 아니라 새로운 지도부를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현승은 북한 탈북자로, 글로벌피스재단(Global Peace Foundation)의 수석 전략가이자 북한 청년 지도자 협의회(North Korean Young Leaders Assembly)의 설립자이며, 『코리아 리저널 리뷰(Korea Regional Review)』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해운 및 광업 분야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북한군 특수부대 상사로 복무한 경력이 있다. 그는 2014년 정부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인해 탈북했다. 그는 동북재경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