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더 이상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없는가”?

글: 이현승

한 다리는 짓는 데 495일이 걸렸다. 다른 다리는 개통하는 데 16년이 걸렸다.

9월 7일,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최초의 자동차 다리 위로 트럭들이 건너갔다.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로의 소박한 다리다. 그로부터 5주 뒤인 10월 15일,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신압록강대교가 마침내 개통됐다. 중국이 건설비 전액을 부담해 2014년에 완공했지만, 이후 12년 동안 쓰이지 않고 방치된 다리다. 다리가 콘크리트로 쓴 정치적 성명서라면, 평양은 방금 두 장의 성명서를 내놓은 셈이다. 둘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압록강 다리 개통을 반긴 많은 논평이 놓친 사실이 드러난다. 김정은은 베이징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 베이징을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기다림의 다리

신압록강대교는 지금과는 다른 북한에서 태어났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평양을 방문 했을 때, 김정일은 북중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이 사업을 승인했다. 사업을 이끈 사람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었다. 장성택은 단둥 랑터우 지역과 맞닿은 북한의 섬 황금평을 개혁·개방의 시범 지역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리는 전액 중국 자본으로 지어져 2014년에 완공됐다. 그러나 2013년 12월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개혁 노선은 물론 북중 경제협력의 틀 전체가 함께 무너졌다.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선생은 이를 더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는 2014년 7월 김정은이 고모부가 추진하던 중국식 개혁·개방에 강하게 반발했다고 기억한다. 리정호선생에 따르면 김정은은 간부들에게 “중국과의 관계를 끊고 러시아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이는 공개된 지시문이 아니라 한 탈북 인사의 증언이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일들과는 맞아떨어진다.

러시아 다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2024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 때 합의됐고, 2025년 4월 착공했다. 정권도 같았고, 국경 지형도 같았고, 건설 능력도 같았다. 달랐던 것은 오직 정치적 의지뿐이었다.

참석자 명단 읽기

평양에서 의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고위급만 보면 두 행사는 대칭을 이룬다. 북한의 박태성 내각총리는 두 행사 모두에서 화상으로 축하발언을 했다. 상대는 첫 행사에서는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 두 번째 행사에서는 리창 중국 총리였다. 진짜 차이는 각 다리 위에 실제로 서 있던 사람들에게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KCNA)

신의주에는 북한이 노동당 평안북도위원회 책임비서와 도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보냈다. 여기에 주중 북한대사와 심양 주재 북한 총영사가 함께했다. 중국은 랴오닝성 당서기, 랴오닝성 부성장, 주북한 중국대사로 같은 급을 맞췄다.

아이러니는 구조적이다. 신압록강대교는 길이 3km에 왕복 4차로다. 두만강 다리는 길이 약 1km에 왕복 2차로다. 더 크고 비싼 다리는 지방 관리들에게, 더 작은 다리는 중앙정부의 경제 각료들에게 맡겨졌다.

공정하게 말하면, 중국 측 참석자 명단을 평양이 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의 급과 구성은 전적으로 북한이 결정했다. 북한은 러시아 다리에는 중앙정부의 경제 각료들을, 중국 다리에는 지방의 정치·행정 간부들을 보냈다.

더 주목할 점은 참석자들의 ‘급’만이 아니라 ‘직능’이다. 박태성 총리는 축하발언에서 압록강 다리가 호혜적인 경제협조에 새로운 활력을 더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밝혔다. 조선중앙통신도 이 다리가 북중 간 경제적 연계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신의주 개통식에서 이름이 거론된 북한 인사 가운데 경제 관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당 책임비서, 도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대사, 총영사는 모두 정치·행정·외교 라인 출신이었다. 중국 측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두만강 다리 준공식에는 대외경제상과 국토환경보호상이 직접 참석했다. 대외경제상은 북한의 대외 경제협력을 총괄하며, 러시아와의 정부간 경제협력위원회를 이끄는 인물이다. 결국 북한은 경제협력을 말로는 중국과 하고, 실제로는 러시아와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김정은의 의중과 현재 북중 관계의 온도를 이해하는 핵심 대목이다.

언어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조선중앙통신은 북러 관계를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이자 “불패의 동맹관계”라고 표현했다. 러시아 다리에는 1946년 김일성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소련 붉은군대 장교 야코프 노비첸코의 이름이 붙었다. 러시아를 김씨 왕조의 건국 서사에 엮어 넣은 선택이다. 반면 중국 다리에 관한 보도는 사회주의 이념의 공유와 역사적 기념일에 기댔다.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리창 총리의 발언이었다. 그는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조친선을 고도로 중시하는 중국의 확고한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는 지시를 내리는 후견인의 말이라기보다 확인을 구하는 동반자의 말에 가깝다.

교역 착시

교역이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는 기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 다리로 접경 지역의 물동량 처리 능력이 최소 3~5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처리 능력이 곧 수요는 아니다.

교역은 새 다리 없이도 이미 회복돼 있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2025년 북중 교역액은 27억 3천만 달러였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의 27억 9천만 달러에 근접한 수치다. 2026년 상반기 교역액은 약 15억 달러로, 대북 유엔 제재가 전면 강화된 2017년 이후 상반기 기준 최고치였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교역도 있다. 베이징은 러시아로 기우는 김정은을 붙잡기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로 대북 수출이 금지된 각종 차량과 트럭의 밀수를 사실상 눈감아 왔다. 북중 국경의 양강도 혜산에서는 밀수된 중국산 중고차가 공터와 골목을 빼곡히 채운 모습이 포착됐다. 평양에서는 개인이 소유한 중국 브랜드 자동차가 늘어 교통 체증과 주차난까지 나타났다. 신압록강대교 개통 직전에는 번호판 없는 중국산 화물차 100여 대가 다리 입구에서 대기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평양 시내와 국경 지역을 달리는 중국 차량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다리는 폭넓은 경제협력의 통로라기보다 ‘생존형 물자’의 통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원자재 수출, 그리고 식량과 건설 자재의 수입을 말한다. 평양은 다리를 열면서도 “모기장”을 칠 것이다. 물자는 들이되 외부 정보와 사상은 걸러내는 방식을 가리키는 북한의 오랜 표현이다. 오히려 주민과 간부들을 겨냥한 사상 검열과 처벌은 이전보다 더 가혹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 정권은 무역 일꾼, 화물차 운전기사, 세관원처럼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자체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여긴다.

장성택 시절 북한이 중국과의 협력으로 누렸던 경제적 혜택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가발과 인조 속눈썹 같은 위탁가공품의 원자재가 단둥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당한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완제품이 다시 ‘합법적으로’ 북한 밖으로 나온다. 신압록강대교가 바로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품목들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한 북한인권단체의 보고서는 북한산 가발의 약 70%가 교화소 여성 수감자들의 강제노동으로 생산된다고 고발했다. 같은 보고서는 그 완제품이 중국의 가공무역 체계를 거쳐 ‘메이드 인 차이나’로 세계 시장에 팔린다고 밝혔다. 북한산 인조 속눈썹이 중국에서 공공연히 재포장돼 중국산으로 둔갑한다는 보도도 있다. 왕복 4차로의 새 다리는 이 공급망을 더 빠르고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김정은의 셈법

왜 러시아가 먼저인가? 모스크바는 베이징이 주지 않는 것을 준다. 두 나라는 2024년, 어느 한쪽이 공격받으면 상호 지원하도록 규정한 방위조약을 맺었다. 북한은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수천 명의 병력을 보냈다. 러시아는 안보와 실전 경험, 외화를 제공하면서도 북한 정권에 개방이나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다. 중국은 시장과 경제적 생명줄을 제공하지만 ‘감염’도 함께 실어 온다. 넘쳐나는 중국산 물건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기 체제가 얼마나 뒤처졌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김정은의 진짜 우선순위는 여전히 러시아와의 밀착이며, 중국은 보조 수단으로 쓰인다. 이번 개통은 김정은의 주도적 결단이라기보다, 지난 6월 시진핑 주석의 방북 이후 이어진 중국의 요구를 더는 미룰 수 없었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만강 다리가 1년 남짓한 기간에 속전속결로 지어지는 것을 지켜본 베이징의 불쾌감도 상당했을 것이다. 평양은 친중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문을 반쯤 열었을 뿐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중소 분쟁 시기에 펼쳤던 등거리 외교를 다시 펼치고 있다. 이번에는 핵무기라는 지렛대까지 쥐고 있다. 다만 이번 판에서 북한의 신뢰는 러시아가, 교역은 중국이 가져간다.

결론: 베이징은 평양으로 가는 열쇠가 아니다

워싱턴과 서울은 오랫동안 익숙한 공식에 기대 왔다. 북한 경제의 생명줄을 쥔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평양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는 공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직접 담판을 원하고, 한국 정부가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한다면, 그 출발점은 대개 이 공식이다.

두 개의 다리는 이 공식이 이미 낡았음을 보여준다. 평양은 중국에 경제 통로를 열어주었지만, 전략적 신뢰는 러시아에 주었다. 러시아가 안보 후원자로 뒤를 받치고 있고 제재는 물리적으로 뚫린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적 지렛대는 예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게다가 지금의 중국은 북한을 압박하는 나라라기보다, 북한을 러시아에 빼앗기지 않으려 붙잡는 나라에 더 가깝다.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거듭 다짐하는 나라가 평양에 최후통첩을 내밀기는 어렵다.

따라서 워싱턴과 서울이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과 협상하려 한다면 전술을 다시 짜야 한다. 평양의 셈법에서 중국은 ‘다리’일 뿐 ‘열쇠’가 아니다. 오늘날 김정은의 계산을 바꿀 가능성이 가장 큰 변수는 베이징보다 모스크바 쪽에 있다. 어떤 협상 전략이든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에서 얻는 이익을 어떻게 상쇄하고, 그 밀착의 대가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두만강 다리는 러시아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기 위해 지어졌다. 압록강 다리는 압력에 밀려 열렸고, 평양은 이를 철저히 통제할 것이다. 평양과의 협상/대화 경로를 찾는 이라면 누구든 그 차이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현승은 북한 탈북자로, 글로벌피스재단(Global Peace Foundation)의 수석 전략가이자 북한 청년 지도자 협의회(North Korean Young Leaders Assembly)의 설립자이며, 『코리아 리저널 리뷰(Korea Regional Review)』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해운 및 광업 분야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북한군 특수부대 상사로 복무한 경력이 있다. 그는 2014년 정부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인해 탈북했다. 그는 동북재경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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